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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상 기획

인도가 지난 십 수년간 경제적으로 급부상하면서 세계는 깊은 잠에서 깨어나는 코끼리에 비유하며 인도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중국과 세계 1~2위를 다투는 인구와 그 중 25세 이하가 절반이 넘는 젊은 국가라는 점 때문이다. 이젠 인도가 더 이상 가난한 나라의 대명사가 아니라 기대의 아이콘이 된 것이다.

사실 인도는 세계 4대 문명지이자,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 시크교 등 주요 종교의 발생지일 뿐만 아니라 산스크리트어로 기록, 전승되어온 베다(우파니사드), 바가바드기타의 철학적 사유는 인류 정신사에 크게 기여해왔다. 인도가 문명, 문화사적으로 결코 서구에 뒤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수세기 동안 서구의 패권에 의해서 주변국으로 밀려나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빠른 경제 성장을 배경으로 다방면에서 깨어나는 중이며 예술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수년간 크리스티 경매에서 인도 현대미술 작품들이 수십 억 원 넘는 낙찰가를 다수 기록하는 등 국제 미술시장에서도 인도에 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 전시는 최근의 인도 현대미술의 한 단면을 보여주기 위해 기획하였으며 다음 두 가지를 고려해서 작가를 초대하였다. 하나는 인도의 현대미술의 다양성을 보여주려는 관점이다. 그 일환으로 현대미술의 영역에서 도외시 되었던 부족미술가의 작품, 즉 인도 전통의 토착미술을 포함시켰다. 인도 내에서 인도 민화나 부족미술은 인도 미술의 다양성 가운데 결코 소외 될 수 없는 위상을 지녔다.  각기 다른 수십 개의 부족 미술과 민화가 오늘날에도 지속해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 최대규모의 아트페어도 상당한 규모로 이들 인도 부족미술과 민화를 소개하고 있다. 이들 작품들이 비록 전통에 기반하지만 이 시대 인도인의 현실적 삶을 담아내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두 번째 고려사항은 현재 인도 미술계에서 활발한 작품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비교적 젊은 층에 해당하는 작가를 대상으로 했다. 인도가 큰 나라인 만큼 지역까지도 고려했고 작품 경향도 참고해서 6명의 작가를 선정했다.

사실 여섯 명의 작가 작품으로 한 나라의 미술을 조망하는 것은 가능하지가 않다. 더욱이 인도는 작은 나라가 아닐 뿐 아니라 수 많은 작가와 다양한 작품 경향을 보여주는 나라다. 이 전시가 그런 한계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인도 미술의 한 단면을 이해하는 단초를 제공해 주리라고 본다. 내가 개인적으로 체감한 인도 미술의 흐름은 지역별, 세대별, 학교별로 다소 차이가 있으나 큰 틀에서 보면 대체로 서구로부터 이식된 미적 담론에 매몰되지 않고 인도 전통의 가치와 병립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또한 불평등과 차별, 개발에 따른 환경 파괴, 난민, 지구 온난화 등 지구적, 사회적 이슈를 작품의 모티브로 삼는 작가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블루인디아로 명명한 이 전시가 역동하는 인도 미술의 오늘과 내일을 만나는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

참여 작가

비노이 바게스
프라산타 사후
라즈 모레
아슈토시 바드와즈
쉐이크 아즈가르 알리
자페니 샴

비노이 바게스

생업을 위해 한 때 극장의 영화간판과 정치 포스터를 직접 그렸던 작가 비노이 비게스(Binoy Varghese)는 자신의 과거 경험을 십분 활용하여 사회와 호흡하는 작업에 몰입하고 있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인도 남부 케랄라(Kerala)는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선거를 통해서 사회주의 의회가 들어선 지역으로 그의 사회주의적 리얼리즘 작품경향은 그 안에서 매우 자연스럽게 체득된 것이라 짐작할 수가 있다.
그의 작품 키워드에 해당하는 소외된 인간은 그가 경험한 삶의 여정에서 잉태한 것이다. 초기 작품은 무성한 초목과 밝은 꽃을 배경으로 일련의 여성과 소녀들을 클로즈업 이미지가 주를 이루었고 뒤로 가면서 목가적인 자연과 이와 대비되는 소외된 자들의 형상을 비교하는 작품으로, 최근에는 사회 정치적인 렌즈로 삶의 현장에 읽어내는 작품에 몰입하고 있다. “Let 100 Flowers Bloom(2018)”는 깨랄라 노동자의 임금상승을 요구하는 여성 노동자의 절규를 담아낸 작품이다. 이 노동자들의 폭동이 케랄라(Kerala) 정치사의 전환점이었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싶었다는 작가의 언급에 비추어 보면, 어둠을 딛고 일어서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라고 하겠다.

라즈 모레

라즈모레는 뭄바이에서 핫하게 뜨고 있는 작가다. 최근에 뭄바이 쇼핑몰에서 열린 그의 개인전은 마치 인기 연예인을 방불하게 할 만큼 북적거렸고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 이유가 연예인 닮은 그의 기질도 한 몫을 하지만 팍팍하고 혼돈스럽기까지 한 뭄바이의 삶을 유머러스 하게 그려낸 작품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주로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을 두툼하게 여러 번 덧칠하고 그 위에 거친 붓 터치로 마무리 한다. 이러한 제작 기법은 대체로 내재한 강한 열정 또는 에너지를  드러내고자 할 때 적합하다. 이 작가는 고단한 삶의 본보기인 뭄바이 슬럼가를 옆에서 오랫동안 지켜본 관찰자로서 그로부터 영감 받은 강한 에너지의 분출이 필요했다. 따라서 슬럼가의 불확실성 내지 치열한 삶의 투쟁을 드러내는데 적합한 비쥬얼로서 작가는 거칠고 두툼한 마띠에르(matiere)를 택한 것이다. 이번 전시에 그는 황소 시리즈 작품을 출품했는데, 심각한 빈부격차를 배경으로, 생존 기회주의자 성격을 지닌 황소가 현대인들, 특히 도시 엘리트 계급의 사치와 욕망의 상징으로 제시하고 있다. 참고로 이 작가의 작품이 한국에 처음 소개된 것은 2008년으로 서울의 EM 갤러리가 개최한 인도작가 대상의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으면서다. 그 이후 몇 차례에 걸쳐 한국에서 그룹 초대전시를 가졌는데 매번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낸 바가 있다.

쉐이크 아즈가르 알리

자유로운 생각의 유희를 그리는 작가다. 낙서화의 한 유형으로 보여지는 그의 작품들은 정돈되지 않은 내면의 단상들을 나열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불현듯 속구 치는 욕망의 순간, 과거의 회상 등 막연한 개인적인 경험 뿐 아니라 사회, 정치적인 이슈를 드러내는 메시지까지 무질서한 가운데서도 어린애의 놀이 같은 순수함과 자연스러움을 잃지 않고 있는데, 이는 작가의 뛰어난 감각적인 언어와 이를 뒷받침하는 탄탄한 구성력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본다. 일견 작품의 구성방식이 낙서화가 바스키야(Jean-Michel Basquiat 1960-1988)의 작품과 유사해 보이지만, 그 만의 독특한 사유방식과 시각언어는 보다 치밀한 구성에 기반해 있다.

자페니 샴

곤드(Gond)는 인도에서 가장 큰 부족(tribal)의 이름이다. 곤드 아트(Gond Art)는 이들 부족이 전통적인 축제나 행사 때에 주변에 사는 야생 동물, 나무와 숲, 부족의 전설, 힌두 신 등을 벽에 그렸던 전통에서 유래했다. 작가 자페니 샴(Japani Shyam)은 곤드 부족 출신의 전통미술가로 그녀의 아버지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그녀의 아버지 장가 싱 샴(Jangarh Singh Shyam 1962-2001)은 곤드 작가로서 인도 전통미술의 전설로 불리는데 그 이유가 빌리지 벽화 수준이던 곤드 아트를 당대 미술로 업그레이드 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가 곤드 벽화를 캔버스에 옮겨 작업한 최초의 작가였고, 국제적인 미술전시에 초대받은 최초의 곤드 아티스트였다. 사후인 2012년에 그의 작품이 광주비엔날레에 선보이기도 했다.
그의 딸인 자페니 샴(Japani Shyam)은 아버지의 예술적인 감수성을 이어받은 충실한 후계자로서 현재 인도 미술계에서 주목하는 작가로 성장했다. 그녀가 이번 전시에 출품한 작품은 곤드(Gond)의 유산인 자연친화 사상 즉 숲, 야생동물, 인간과 신(힌두신)이 함께 평화롭게 공존하는 내용이다. 천진 난만하게 펼쳐진 풍경들은 신화, 자연, 인간애의 숭고한 가치를 환기시킨다.

아슈토시 바드와즈

내가 기억하기로 아쉬토시의 초기 작품들은 미디어 광고에 나오는 욕구의 대상들에 열광하는 중산층 인도인들의 모습을 패러디 하면서 그 배후에 존재하는 권력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났다. 이번 전시를 통해서 오랜만에 그의 그림을 만났다. 이전 작품과 비교해 비평적 시각의 관점에서 원만한 소통의 관점으로 시선을 이동해 가는 모습이다. 그가 내세우는 작품 이정표인 ‘제 3의 언어를 수반하는 링구아 프랑카 (Lingua Franca)의 진화’가 그 예다. 링구아 프랑카(Lingua Franca)는 모국어를 달리하는 사람들이 상호이해를 위하여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를 지칭하는 말이다. 언어의 다름, 문화의 다름, 지적인 차이 등이 수반하는 현대적 유목 사회에서 소통을 위한 유용한 키워드인 셈이다. 그는 그의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작품에서 추구하려는 것은 단절된 소통의 회복을 향한 시간과 공간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시각적 언어를 만들어 뿌리 깊은 폭력, 편협함, 광신주의의 미묘한 뉘앙스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대중 문화, 미디어 (인터넷) 및 역사 자료실에서 조심스럽게 입수 한 자료가 필요하며 손으로 수행되는 느리고 명상적인 과정에서 검사하고 실행해야 한다. “

프라산타 사후

그의 작품은 그가 살아온 경험이 깊이 투영되어 있다. 그의 아버지는 측량기사 (surveyor)로서 고향을 떠나서 일을 했고, 그는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했으나 엉뚱하게도 고향에 광고 회사를 차렸다. 91년 당시 폭동으로 상점이 불이 나면서 그는 수년 동안 운영했던 광고회사를 접고 예술가의 길로 들어선다. 극적인 삶의 전환을 꾀한다. 이후 7년간 미술 대학과 대학원을 수학하며 현대미술에 눈을 뜨고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선다. 그의 삶의 궤적을 대략 언급하는 이유는 그의 과거 삶의 흔적이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한 예를 들면 전신주에 매달려 작업하는 전기 엔지니어를 소재로 한 작품을 보면, 그가 스스로 경험한 삶과 맞닿아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엔지니어는 단순히 한 명 또는 소수의 노동자가 아니다. 이들을 ‘알려지지 않은 군중’으로 설정하고, 건축가가 건물을 설계하듯이 보다 치밀한 계획하에 접근한다. 사건에 대한 재조사도 병행한다. 꼼꼼히 챙긴 시각적 증거들은 사건 조사의 결과물이자 작품을 구성하는 핵심요소다. 여기에 그의 지적 탐구가 개입하여 보다 정교해지고 나아가 순수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다층적 의미를 함유한 그의 작품은 결국 인정받지 못하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중요한 상황과 얼굴을 드러내는 데 있는 것이다.